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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바늘에 찔린 만큼만 아파하기
    tell 2021. 3. 11. 10:42

     

    상처받았다. 그런데 상처받지 않은 척해야 했다. 내가 지켜야 할 정체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많은 상처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지켜야 하는 정체성 때문에 그 상처를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시간은 정말 답답하다. 나에게 말을 순하게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어떤 한 사람은 순하지 못한 말로 나에게 상처를 주었다. 또, 어떤 사람은 내가 다른 친구에 비해 잘 이겨낼 것 같다며 홀로 쉽게 풀지 못하는 문제를 나에게 한 아름 안겨주었다. 결국 그 문제를 풀긴 풀었지만 그럼에도 내가 그에게 강한 모습만 많이 보여준 탓에 나에게 문제를 떠맡긴 건가 싶어 스스로를 많이 자책했다. 이게 과연 나를 지키는 게 맞는지,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한 훈련의 과정인지, 때문에 참아야 하는 것인지 참 많이 혼란스럽고 어려웠던 지난 날이다.

     

    사실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이런저런 상처 때문에 내가 해야 할 것들을 놓치는 건 유일한 인생의 어떤 한 부분을 낭비하는 태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많이 아팠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그 찔린 바늘만큼은 아파하고 있다.

    바늘에 찔리면 바늘에 찔린 만큼만 아파하면 된다.

    '왜 내가 바늘에 찔려야 했나', '바늘과 나는 왜 만났을까', '난 아픈데 바늘은 그대로네'.

    이런 걸 계속해서 생각하다 보면 예술은 할 수 있을지 몰라도 사람은 망가지기 쉽다.

    도대체, <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 위즈덤하우스

     

    정체성을 지켜야 한다는 이유 때문에 상처를 모른 척했다. 혼자 끙끙 되며 쉽게 상처를 드러내지 않았다. 상처 없이 자란 척, 강한 사람인 척, 긍정적인 사람인 척을 많이 했다. 물론 어떤 면에서는 상처가 없고, 강하고, 긍정적이다. 하지만 그 모습만 완전히 갖고 있는 사람은 아니다. 때문에 이제는 상처를 지녔음을 인정하고 아파한다. 사실 이 마음은 어제도 실천했다. 어제 마음껏 속상해했다. 그리고 그 속상함을 풀기 위해 내 마음을 살폈고, 결이 맞는 친구와 연락을 했다. 또, 재밌고 귀여운 영상들을 보며 웃었고, 내게 유익이 되는 글과 영상들을 보며 다시 나의 원래 일상 순환 과정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아파하고, 느끼고 싶은 걸 느끼고, 하고 싶은 걸 하니까 나의 상처는 어느 정도 아물었다. 직접적인 대상과 관계된 상처는 그 대상과 풀어야 하지만 이 과정을 겪지 않은 채 바로 대면해 풀어야 한다면 내 마음은 아주 새까맣게 타들어갔을 거다. 그렇지만 난 아파하는 시간을 가진다. 때문에 마음을 태우지 않으며 엉킨 실타래를 조금 더 건강하게 풀어간다.

     

    아파하는 시간을 통해 한 가지 강력하게 깨달은 점이 있다. 아파한다고 해서 지키고 싶었던 그 정체성이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 지난날은 정체성이 흔들릴까 봐 쉽게 아파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실제로 아파해보니까 정체성은 그리 쉽게 무너지지 않았다.

     

    아픔의 시간을 가지니까 상처에 감사한 면도 있다. 바로 상처를 통해 사람과 상황을 이해하는 폭이 넓어졌다는 점이다. 이제는 상처의 기운이 느껴지면, 아파함과 동시에 '나도 누군가에게 이런 상처를 안겨주었던 적은 없었나', '이런 상처를 받은 사람은 속상했겠구나'와 같은 생각을 한다. 실제 경험해본 사람만이 잘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 진짜구나 싶다.

     

    사실 내가 상대방이 갖고 있는 상처의 크기, 바늘의 크기를 쉽게 가늠할 수 없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바늘의 구멍이 크고, 아플 수 있기 때문에 섣불리 타인에게 이런 저런 말을 하기란 어렵다. 그럼에도 상대방에게 나는 당신과 비슷한 경험을 했고, 당신이 나를 필요로 한다면 함께 아파하고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은근슬쩍 표현할 수 있는 사람은 된다.

     

    아픔을 느끼는 시간은 내가 마냥 와르르 무너지게 만들지 않았다. 주위에 좋은 사람들이 있다는 걸 말해주었고, 번잡한 일상 속 휴식을 취하게 했다. 재충전의 시간과 함께 지키고 싶었던 정체성을 더 지키도록 만들었다. 또한, 되돌아봄으로 롱런할 수 있게 도왔다. 때문에 난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아파하자고. 단, 그 바늘에 찔린 만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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