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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어난 게 범죄, 물고기를 잡는 방법뿐만 아니라 낚싯대까지
    book 2021. 1. 6. 11:26


    104p.

    "과거로부터 배우고 과거보다 더 나아져야 해." 엄마는 말했다. "하지만 과거를 슬퍼하지는 마라. 인생은 고통으로 가득해. 고통이 너를 단련하게 만들되, 마음에 담아 두지 마. 비통해 하지 마라."

    107p.

    엄마에게 한 가지 목표가 있다면, 그건 내 마음을 자유롭게 하는 것이었다. 엄마는 성인 대하듯 내게 말했는데, 그건 흔치 않은 일이었다. 남아공에서는 아이는 아이끼리 놀고 어른은 어른끼리 말한다. 어른들은 아이를 감독하지만 절대 아이들 수준으로 내려와 말을 걸지 않는다. 하지만 엄마는 그렇게 했다. 항상 나를 절친처럼 대했다. 내게 늘 이야기를 들려주고 교훈을 줬다. 특히 성경의 교훈들을. 엄마는 특히 시편을 아꼈다. 나는 매일 시편을 읽어야 했다. 그러면 엄마는 퀴즈를 냈다. "이 구절의 의미는 뭐지? 그게 너에게 어떤 의미가 있니? 그걸 네 삶에 어떻게 적용해야겠니?" 이런 과정이 매일 이어졌다. 엄마는 학교가 하지 않는 걸 했다. 내게 생각하는 법을 가르쳐 준 것이다.

    114-115p.

    엄마는 흑인들이 절대 가지 않는 장소에 나를 데려갔다. 그녀는 '흑인들은 그럴 수 없다'거나 '흑인들은 그래서는 안된다'라는 말도 안 되는 생각에 얽매이길 거부했다.

    (중략)

    엄마는 내가 갈 수 있는 곳과 할 수 있는 일에 한계란 없다는 듯 나를 키웠다. 되돌아보면 엄마는 나를 백인 아이처럼 키운 것 같다. 백인 문화에 따라 키웠다는 게 아니라, 세상이 내 것이 될 수 있다고 믿게 했고, 내가 나 자신을 변호해야 하고, 내 의사와 결정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심어줬다는 뜻이다.

    우리는 사람들에게 각자의 꿈을 좇으라고 말하지만, 사람들은 자신이 상상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꿈꿀 수 있다. 그리고 상상력은 자신의 출신에 따라 제한을 받게 된다. 소웨토에서 자랄 때 우리의 꿈은 집에 방 한 칸을 더 늘리는 것이었다. 이왕이면 진입로도. 또 언젠가는 진입로 끝에 철제 대문을 세울 수 있길 바랐다. 이게 우리가 아는 전부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능성의 최상층은 우리가 볼 수 있는 세계를 넘어선다. 엄마는 그 가능성을 내게 보여 주었다.

    115p.

    흑인 거주구에서 힘든 삶을 이거 가거나 나를 유색인 고아원으로 보내버리는 게 훨씬 더 '그럴 만한' 선택지였다. 하지만 우리는 결코 그렇게 살지 않았다. 우리는 오직 앞으로 나아갔고 늘 빠르게 움직였다. 법이 허용하고 다른 사람들이 그러기 전에 이미 저만치 앞질러, 밝은 오렌지색의 개똥같은 폭스바겐의 창문을 활짝 열고 지미 스와가트가 목청껏 예수님을 찬양하는 소리를 들으며 고속도로를 질주했다.

    346p.

    상대방의 언어로 말하려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아무리 기초적인 말에 그친다고 해도 '나는 당신도 내 것 이외의 문화와 정체성을 가졌다는 걸 이해합니다. 나는 당신을 사람으로 대합니다'라는 의도를 전달할 수 있는 것이다.

    356p.

    "너는 내가 널 괴롭히는 미친 늙은 마녀 같겠지." 엄마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내가 널 심하게 몰아붙이고 네게 잔소리를 하는 이유를 잊어서는 안 된다. 그게 널 사랑하기 때문이란걸. 내가 네게 한 모든 일은 다 사랑에서 비롯된 거야. 내가 널 혼내지 않으면 세상은 널 더 심하게 혼낼 테니까. 세상은 널 사랑하지 않는다. 경찰은 너를 사랑해서 잡는 게 아니잖아. 내가 널 때릴 때는 널 구하려는 거야. 그들이 널 때릴 때는 널 죽으려는 거란다."

    420-421p.

    엄마의 병원비는 총 5만랜드가 나왔다. 퇴원하는 날 내가 그 돈을 냈다. 병원에 입원해 있던 나흘간, 친척들이 찾아와 이야기를 나누고 웃고 울었다. 퇴원하기 위해 짐을 챙기면서 나는 지난 한 주가 얼마나 정신없이 흘러갔는지 떠올렸다. "엄마가 살아나서 다행이에요." 내가 엄마에게 말했다. "그런데 전 여전히 엄마가 의료 보험에 가입하지 않았다는 게 믿기지가 않네요."

    "오, 하지만 난 보험에 들어 있어." 엄마가 대꾸했다.

    "보험이 있다고요?"

    "그래. 예수님 보혈."

    "예수님이요?"

    "예수님."

    "예수님이 엄마의 의료 보험이라고요?"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하시는데, 누가 감히 내게 맞설 수 있겠니?"

    "그렇다 쳐요. 엄마."

    "트레버, 난 기도했어. 늘 기도했잖니. 뭘 바라고 기도한 게 아냐."

    "엄마도 알잖아요." 내가 말했다.

    "이번만큼은 엄마랑 말싸움을 할 수가 없네요. 그 총과 총알, 그건 어떻게 설명할 수가 없으니까요. 그러니 이번만은 인정할게요." 하지만 그래도 마지막 잽을 날리고 싶은 유혹을 떨쳐 버릴 수 없었다. "그래도. 엄마 병원비를 낼 때 예수님은 어디 계셨죠? 예수님이 그 돈을 낸 건 아니라는 걸 제가 아는데."

    엄마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네 말이 맞아. 예수님이 안 냈지. 하지만 그렇게 해준 아들을 내게 선물해 줬잖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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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태어난 게 범죄>를 읽었다. #아파르트헤이트 에 대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그에 대한 여러 내용을 #트레버노아 의 일화로 아주 잘 풀어쓴 책이다. 진짜 술술 읽힌다. 추천하고 싶다. 출판 당시 미국 아마존에서는 top5에 있었을 만큼 인기를 얻었는데 한국에서는 크게 관심받지 못한 아쉬운 도서라 들었다.

    책의 내용 중 낚시하는 방법만 가르쳐주는 게 아니라 낚싯대까지 줘야 한다는 느낌을 풍기는 문장(303p)이 있었는데 공감했다. 우리는 서로에게 물고기를 그냥 주는 게 아니라, 잡는 방법을 가르쳐줘야 하는 것이고, 잡는 방법만 가르쳐주고 끝나는 게 아니라 낚싯대까지 제공해 줄 수 있어야 한다.

    때문에 나는 생각했다. 잡는 방법을 잘 알려줄 뿐만 아니라 낚싯대까지 제공해 주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하지만 이게 자발성, 자율성과 같은 '스스로의 힘'을 길러주지 못하게 하는 건 아닐까 싶었다. 고민했고,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의욕' 의 유무다. 그들에게 정말 하고픈 마음이 있는지 없는지, 그 '의욕'의 유무에 따라 물고기를 잡는 방법을 알려주고 낚싯대를 제공해 주어야겠다고. 정말 정보가 없고 방법을 모르는 사람들, 방법은 알지만 도구를 갖출 수 없는 형편이기에 움직이지 못하는 사람들, 그런데 물고기를 정말 잡고 싶은 적극적인 마음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큰 도움이 돼줄 수 있을 것 같다.

    더불어 나도 의욕 있는 수혜자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했다. 제공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았을 때 의욕의 유무가 크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제공자는 의욕 있는 사람에게 무언가 주고 싶은 마음이 크다. 그리고 수혜자에게는 그 의욕이란 게 있어야 배가시킬 수 있다. 또한, 시작할 수도 있다. 의욕이 없으면 정보와 낚싯대를 보관만 한다. 보관만 하면 배가시킬 수 없는 건 당연한 것이다. 때문에 나는 제공자의 입장도 고려해 진짜 의욕이 있을 때 도움을 요청할 것이고, 그 의욕을 보일 것이고, 주신 정보와 낚싯대를 갖고 시작하고 배가시키는 사람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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