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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문장수집] 일하는 마음
    book 2022. 10. 15. 13:54


    10. 네, 저는 유능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건 더 큰 성공을 바라는 마음과는 좀 다른데, 두려운 상황이 점점 줄어들고, 어떤 상황이 주어지더라도 편안하게 스스로 만족할 만한 성과를 만들어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저는 '아직 어떻게 하면 좋은지 알지 못하는 일'에 몸을 던지길 좋아하고, 그 일이 '잘할 수 있는 일'이 되어 또 한 뼘 두려움이 없어지는 것을 좋아합니다.

    11. 저는 모든 일하는 사람이 각자의 방식으로 자기 일을 규정하고, 각자의 리듬에 따라 일하며 살면서도, 적당하게 먹고살 수 있는 사회를 꿈꿉니다. 그런 사회에서는 나의 최대치를 넓혀가고 싶어 하는 제 욕심이 만들어낼지 모를 나쁜 외부효과를 걱정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라고 상상합니다.

    11. 예전이라면 '나랑은 맞지 않는 일'이라거나 '나는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이라고 여겼을 법한 일들을 지금은 참 많이 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굳이 거기까지 하고 싶지는 않다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을 자연스럽게 내 일이라고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런 상황을, 힘들다고 투덜거리긴 해도, 실은 꽤 즐기고 있습니다. 통증이 있은 후에 근육이 자라듯이, 내 '일하는 마음'의 용량도 자라고 있다고 느낍니다.

    12. "대체로 내 삶을 이해하고 버텨내기 위해 쓰인 글들이어서 내 글의 시야는 넓지 않고, 살아낸 깊이만큼만 쓸 수 있는 것이 글이므로 나의 책이란 결국 나의 한계를 모아놓은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안다."

    13. "나의 책에 자신의 시간을 내어주는 분들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우리는 각자의 한계를 통해 연결될 수 있다고 믿게 된다."

    22. 직장은 일상을 구성하는 첫 번째 제약 조건이라서 '직장인'을 정체성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하루 일주일 1년의 생활 주기가 대체로 결정되어버린다. 차곡차곡 다음 단계로의 승진까지 생각하면 딱히 다른 인생 계획 없이도 시간이 휙휙 지나간다. 그러니까 이것은 거대한, 아마도 마라톤 풀코스쯤은 되는 하나의 트랙이다. 그 트랙에서 벗어나 단번에 그만한 길이에 맞먹을 나만의 트랙을 찾아내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한 일이었다.
    망설이며 잡다한 탐색을 해오던 시간을 두어해 보내고 이제 준비가 되었다고 믿게 된 것은 1킬로미터 트랙 정도는 구성할 힘이 생겼기 때문이다.

    23. 중요한 것은 내가 지금 뛸 수 있는 1킬로미터에 집중하는 거였다. 그러다 보니 달릴 수 있는 거리가 조금씩 늘어난 것처럼, 삶의 트랙에서도 어느 날인가 나도 모르게 2.5킬로미터를 뛸 수 있게 되었다.

    25. 가장 큰 이유는 청중이 좋은 에너지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겠지만, 나만을 놓고 보자면 내가 강의 주제에 대해 '자유로움'을 느꼈기 때문이라고, 돌이켜 생각한다.

    26. 그 자유로움이란 아마도 두 가지에서 나왔을 것이다. 첫째는 내가 이 주제에 대해 잘 알고 있다는 확신이다. (...) 지금처럼 스키를 잘 타지 못했을 때는 처음 가는 스키장, 그것도 캐나다나 오스트리아의 큰 스키장의 슬로프에 오를 때면 가슴이 쿵쾅쿵쾅 뛰었다. 날이 흐려 시야가 좋지 못하면 더욱 그랬다. 미지의 상황에 잘 대처할 수 있을까 두려워서였을 것이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스키가 늘고, 언제 어디서 어떤 환경에서든 내 몸을 잘 통제할 수 있다는 감각이 생기자 그런 두려움도 사라졌다. 예기치 못한 상황이 닥쳐도 잘 대처할 수 있다는 믿음에서 나오는 자유로움. 그것은 나의 존재를 보호할 능력이 내게 있다는 단단한 감각이다.

    27. 더 나이 들기 전에 그렇게 자신에 대해 단단한 믿음을 가질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뭐, 다른 비결은 없다 그저 묵묵히 시간을 들이는 것, 그게 글쓰기든 요리든 달리기든 그림 그리기든 무엇이든, 시간을 들인 효과는 누구보다 먼저 자신이 알게 된다.

    27. 거리감이 주는 자유로움은 동일시에서 벗어났을 때 비로소 생겨난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그 주제에 대해 말하는 것이 곧 나에 대해 말하는 것이라고 여겼다면, 아마도 그렇게 자유롭지 못했을 것이다.

    27. 거리감이 준 선물은 그런 자유로움만이 아니다. 무엇보다 내가 하던 일의 의미를 더 큰 맥락, 전과는 다른 맥락에서 바라보게 된 것이야말로 큰 행운이었다. 그 일을 나 자신으로부터 떼어놓을 수 없을 때에는 보이지 않던, 그 일이 놓인 맥락들과 그 맥락들의 교차가 보이기 시작했다.

    28. 일을 통해 나를 보는 것이 아니라, 일 자체를 보는 것. 아이러니하게도 그럴 때만이 나 자신도 온전히 보이는 것 같기도 하다. 나는 '자기'로부터 놓여나는 만큼 어른이 된다고 믿는다.

    29. 실은 일이 곧 나, 일의 성과가 곧 나를 드러낸다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일에서 멀어지고서야 비로소 그 일을 둘러싼 맥락과, 그 안에서 교차하는 나 자신을 포함한 수많은 사람의 이해와 욕망이, 그리고 삶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 덕에 절대적으로 중요한 가치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는 그때그때 다르다. 상황은 늘 변하게 마련이고 당연히 생각도 바뀌어야 한다. (...) 직장에 속해 있을 때나 혼자 일할 때나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쏟는 인간이지만, 결정적인 순간이 온다면 일은 결국 일일 뿐이다. 그럴 수 있다고 믿을 때에만 지금 이 순간 마음껏 일을 중요하게 생각할 수 있다. 거리가 허락해주는 자유다.

    31. "이 팀은 우리 회사가 판단해 선택한 최선의 팀입니다. 누굴 팀에 넣을지 결정하는 것은 우리의 고유 권한입니다. 이 팀이 마음에 들지 않으시면 프로젝트는 진행하지 못하는 겁니다." 나는 굉장히 운이 좋았다. 클라이언트에게서 저렇게 대처할 수 있는 상사와 함께 일하는 것은 한국 사회에서 아마 열에 한 명도 누리기 어려운 행운일 것이다. 그렇지만 이걸 상사 한 명의 태도에 대한 이야기로 수렴시킬 생각은 없다. 그 디렉터는 분명히 훌륭한 분이었지만, 그렇게 대처할 수 있는 것이 한 개인의 자질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당시 내가 속해 있던 직장은 성평등과 능력주의의 원칙을 명확히 갖고 있는 외국계 회사였고,

    32. 동시에 그 어떤 격려나 칭찬보다도 임파워링 한 것이기도 했다.(이보다 더 정확한 단어를 찾기가 어렵다. 나에게 이 질문은 '네게 이 질문에 답할 힘이 있다고 믿는다'는 메시지였다.)

    36. 좋은 것과 나쁜 것은 언제나 함께 온다. 그중 무엇을 중심으로 내 과거를 이야기로 엮을지는 내 선택이다.

    61. "뭐, 내가 선택한 길이니까요"라고. 어느 쪽 길을 간다 해도 언제나 아까운 것은 있기 마련이다.

    64. 슈퍼스타가 된다고 해서 누구나 행복한 것은 아니고, 언제나 행복한 것은 더더욱 아니다. 슈퍼스타로 행복할 수 있다면 고향에 남았다 해도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행복은 결정적인 순간 단 한 번의 선택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좋은 선택이 그 사람의 능력에 달린 것도 아니다.

    68. 어차피 what if를 확인할 방법은 없고, 단 하나의 경로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는, 내가 의식적으로 내리는 선택보다는 내가 어쩌지 못하는 행운과 불운, 그 행운과 불은을 대하는 나의 태도로 결정될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기로 했고, 그 덕에 선택은 가볍게 하고 오늘도 단단하게 살려고 한다. 역시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것은 오늘의 일상뿐이다.

    74. 저렇게 엄마로서 아무렇지 않게 아들 이야기를 즐겁게 하면서도 클라이언트 앞에서는 프로다운 모습을 보일 수도 있다는 것, 엄마로서의 정체성과 프로페셔널로서의 정체성이 자연스럽게 양립할 수 있음을 실제로 본 거죠. 그래서 크게 고민하지 않고 결심할 수 있었어요.

    74. '나는 회사에서 프로페셔널한 모습만 보여야 해'라고 자신을 몰아붙이거나 '나는 아이에게 헌신적이어야 해'라고 스스로 강요하지 않는 사람들, 자신에게 적절한 기준을 만드는 사람들이 주위에 있어서 저도 좀 편하게 생각할 수 있었어요. 그전까지 사회적으로 성공한 여성들의 인터뷰를 읽어보면 '아이는 시어머니나 친정엄마가 다 키워주셨다'거나 아니면 '다른 사람의 열 배 스무 배 노력을 했다'는 식이었거든요. 둘 다 저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모델이었는데, 또래 동료들이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아이를 키우는 모습을 보면서 편안하게 받아들이게 되었어요.

    75. 하지만 모든 블록이 조합된 전체 그림을 봤을 때 나는 어떤 인생에 만족할까 하는 질문을 던졌고, 살아가면서 그런 질문을 염두에 두고 선택하게 되었어요.

    77. 서로 다른 방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과 시간을 많이 보낼수록, 그래서 그들의 일상이 어떻게 흐르는지 직접 볼수록, 내 삶에 대해서, 내가 내리는 선택에 대해서도 조금 편안해진다. 당연한 말이지만 '삶에 정답은 없다'는 것을 눈으로 확인하고 몸으로 알게 되는 것이다. 모든 삶에는 빠진 구석이 있고, 또 그 덕에 채워진 구석이 있다. 모든 삶에는 부러운 점이 있지만 나름의 어려운 점도 있다. 다들 자신에게 중요한 것을 붙들기 위해서는 무엇인가를 버리거나 견뎌야 한다. 내가 이 사실을 좀 더 일찍 알았다 해도, 크게 다른 삶을 살았을 것 같지는 않다. 결국 나라는 사람은, 모두가 그렇듯, 이런 식으로 생겨 먹어서, 다시 돌아간다고 해도 비슷한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런 선택들에 그토록 조바심을 내지는 않았을 것이다. 지나온 시간에 조금쯤 애잔한 마음이 드는 이유다.

    81. 이유는 여럿일 수 있겠지만, 이제 가려던 길로 갈 수 없게 된 사람은 서사적인 의미에서 보자면 아픈 사람, 지금까지 살아오던 삶을 중단당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에게는 새로운 이야기가 필요하다. 그렇기에 아서 프랭크는 "질병은 이야기를 요청한다"라고 말한 것이 아닐까. 원하건 원하지 않건, 새로 이야기를 써야 하는 순간은 누구에게나 닥친다. <몸의 증언>에서 내게 가장 와닿았던 문장은 이것이었다.

    "우리는 우리의 경험을 기술하는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할 필요가 있는데, 이는 이야기를 창조하는 과정이 우리의 남은 삶을 위한 이야기의 요지를 담을 기억의 구조를 창조하는 것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이 알듯 말듯한 문장을 내 멋대로 고쳐 써보자면 이렇다.

    우리는 우리의 경험을 하나의 이야기로서 누군가에게 말할 필요가 있는데, 이때의 이야기는 미래를 담는 그릇을 품고 있다. 우리가 말하는 과거의 이야기는 스스로 바라는 남은 삶의 방식을 지시한다.

    88. 또 축적된다는 의미를 처음으로 제대로 느낀 한 해였습니다. 미래를 그릴 때 현재를 그대로 연장하는 대신, 여지를 많이 두는 힘을 기르고 싶습니다.
    조금 다른 시간대, 전혀 다른 상황을 지나왔지만, 같은 시대를 살고 있는 내 마음과 하나도 다르지 않은 말이다. 현재의 경향을 그대로 연장해 미래를 예측하는 대신, 다른 미래를 만들어내는 가능성을 상상하는 데는 진실로 힘이 필요하다. 개인에게도, 사회에게도.

    153. 그러나 n잡러에게 필요한 것은 고정된 단 하나의 답을 찾는 게 아니라, 그때그때 달라지는 답들을 서로 연결하여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스토리를 만들어내는 일이다. 그리고 그 서사가 유동하는 정체성을 붙들어주는 하나의 정박지가 된다.

    169. 같은 일을 해도 그 일의 경험을 통해 써 내려갈 수 있는 이야기는 사람마다 다르다. 얼핏 보아 파편적이고 불연속적인 경험을 통해서도 일관되고 의미 있는 이야기를 써내려갈 수 있는 사람은 자기 기준을 가지고 있고, 그 기준에 맞춰 자기 일의 경험을 스스로 해석할 수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만들어내는 탁월성은 전문성으로 치환되지 않더라도 굳건한 디딤돌이 되어준다. (...) 스스로 탁월성을 향해 움직이는 사람은 자기 목표를 향해 자기 기준으로 일을 하는 사람이고, 그렇게 일하는 사람은 외부의 훈장이 주어지기 '전에' 스스로 자기 일의 보상을 누린다.

    전문성이라는 디딤돌이 정적인 것, 자격증이나 회사 타이틀, 직책의 이름을 획득하기 위해 한참 머물러야 얻어지는 것이라면, 탁월성은 끊임없이 이것과 저것을 조합하고, 그 모든 경험을 관통하면서 만들어내는 자신만의 역량이자 고유한 스토리일 것이다.

    170. "분절적인 경험밖에 할 수 없다면, 나는 여기서 뭘 얻어갈 수 있을지 먼저 생각해야겠죠. 그리고 일하는 과정에서 계속 개인적인 결산을 해나가는 거죠. 그러니까 조직의 목표와는 별개로, 개인적인 층위 안에서 목표 설정이 되어 있고, 그 목표에 따라 계속 점검해야 한다는 거예요. 일의 경험을 자기 방식으로 해석하지 못하면, 자기 언어가 없이 분절적 경험만을 가진 상태로 머물 수밖에 없으니까요. 보편적으로 인정받는 간판을 획득하고, 그 간판으로 자신의 경험들을 이해받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면, 스스로 언어를 만들고 자신의 경험들을 해석할 수 있는 틀을 규정해 나가는 것 외에 방법이 없어요. 꼭 원대하게 해석을 하라는 의미는 아니에요. 크건 작건 스스로 만든 해석의 틀이 없으면 계속 분절된 자신으로 사는 고통을 겪을 수 밖에 없으니까요. 내가 여기에서 일하는 이유를 사장님이 정하게 하지 말라고, 자기 스스로 정한 방향으로 계속 생각하라는 이야기를 해주고 싶어요. 물론 어려운 일이지만요."

    171. 탁월성을 만드는 힘은 필요 이상을 쏟아붓는 것.
    10분짜리 인터뷰를 위해 밤을 꼬박 새워가며 준비했다고 한다. 그런 시기를 지나고 보니 어느 순간 웬만한 주제는 한 번씩 파고든 적이 있는 것이더라고 했다. 그렇게 자신도 모르게 내공이 쌓였고, 이제는 밤을 새워 준비하지 않아도 비슷한 수준의 인터뷰를 할 수 있게 되었다고, "제가 (앞서) 100만 원 받는다고 100만 원어치만 일하지 말라고 그랬잖아요. 작은 일을 크게 해 보세요. 어느 순간 내공이 쌓여서 큰 일을 하는 데도 고생은 작은 날이 올 겁니다."

    172. "이왕 배울 거면 빨리 배우는 게 낫지. 그래야 빨리 최대한의 즐거움을 누릴 수 있으니까" (...) 초반에 쏟아붓는, 어찌 보면 과잉의 노력이 결국 즐거움의 총량을 늘릴 것이라고 믿는다고 할까. 초반의 이 급속한 성장의 직선을 만들어내는 것은 외부의 기준이라기보다는 대개 자기 스스로의 동기부여다. 빨리 알고 싶다는 호기심이든, 능숙함을 통해 빨리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열망이든, 내 마음속 저 목표점에 빨리 닿고 싶다는 욕심이든.

    173. 과잉의 노력을 쏟아붓는 것은 고용주에게 필요 이상의 노동력을 갖다 바치는 일일 수도 있지만, 내 삶에서 개인적 충만함을 위한 기울기를 만들어내는 일이기도 한 것이다. 가파른 기울기의 짜릿함을 맛본 사람은 다른 경험에 직면해서도 그런 기울기를 추구한다. 가파른 기울기는 즐거움의 총량을 늘린다. 즐거움은 탁월함의 다른 이름이다. 무엇이 즐거운지는 나만이 정할 수 있고, 탁월함 또한 그렇다.

    179. 각 개인에게만 머물러 있으면 흩어지고 말 사건들이 함께 일하는 모두에게 자산으로 축적되는 방법을 고민하는 것이다. 먼저 시작한 사람은 나중에 온 사람들에게 공과 사가 모두 들어 있는 일의 경로를 보여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실패가 개인적인 시행착오로 끝나지 않고 공동의 자산으로 진화한다.

    184. 일에서의 훌륭함과 삶의 온전함

    185. 자신의 존재에 대해, 삶에 대해 진심으로 만족스러운, 그러나 으스댐 한 탈없이 어린아이의 환희를 품은 얼굴을 하고 있어서 더욱 그랬다.

    196. 그렇게 힘든 상황에서도 끝까지 책임을 짐으로써 자신의 존엄을 지키려 하시는구나 싶었다. 염치를 차리며 산다는 것은 이런 것일 테다.

    198. 각각의 사정이 있는 사람들. 일은 사람이 한다, 제각각의 사정이 있는 사람들이. 그리고 그런 제각각의 얼굴이 드러나도 좋은 곳에서 일하며 산다는 것, 그 얼굴이 지닌 맥락을 상상해보고 이해해볼 여유를 갖고 서비스를 사고판다는 것은 일의 본질을 바꾸기도 한다.

    226. "고통은 여기에 두고 가세요. 그리고 세상에 나가 당신의 근사한 일들을 하세요."

    237. 불편함을 나눌 수 있고, 머리를 맞대어 불편함을 해결할 방법을 함께 고민할 사람들이 있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진다.

    240. '오래 버텨야지, 갈 수 있는 한 멀리 가야지'하는 마음이 든다.

    242. 나를 중심으로 얼마 큼의 동심원에 대해 책임감을 느끼는가. 그 책임감의 범위가 한 사람이 지닌 사회적 역량의 크기일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내게 스승이 되어주는 사람은 내게 새로운 책임감을 알게 해주는 사람이다. 요즘 내게는 스승이 참 많고, 그 덕에 모르는 길로도 나아갈 힘을 얻는다.

    247. 불특정 다수의, 누구인지 모를, 대체 왜 내 글을 읽는지 모르는 사람들이 아니라, 내 글이 가닿기를 바라는 사람이 누구인지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하는 얼굴들을 향해서만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248. 내가 원하는 건 글을 잘 쓰는 게 아니었다.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잘 전달하는 글을 쓰고 싶고, 거기서 더 나아가 '내가 썼기 때문에' 의미 있는 글을 쓰고 싶어졌다.

    254. 결국 유일한 준비는 '하고 싶은 마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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